아이디어등 중요한 지식조각의 작성할때는 즉각적으로 사용가능한 방법중에서 가장 편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진 지식조각을 그대로 놔두게 되면 시간에 흐름에 따라 기억과 함께 맥락적 정보의 소실을 가져오게 되므로 이러한 정보를 보완해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이유가 의외로 고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방법론들이 디지털화된 현실에서도 생각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본질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아는 교수님의 일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그 순간 집중하고 있는 맥락에 따라 공책에 일련의 과정들을 적어가면서 여러가지 참고문헌을 보곤 한다. 그 참고문헌들은, 프린트되어 있거나 컴퓨터에 보여지고 있지만, 해당 맥락에서는 또 새로운 폴더에 들어가있기에 본질적으로 각 논문파일은 중복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논문의 경우) 논문의 파일에 형광펜으로 줄이쳐져 있고 메모도 달려 있으므로, 그 폴더의 맥락적 정보와 함께 중요한 단서들을 재참조 할 시점에 제시해주곤 한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옆에 놓여져있는 공책에 본인만의 스타일로 기입된다. 가끔은 계산을 해둔 파일명을 적어두기도 한다. (그분이 처음 컴퓨터로 연구활동을 했을때는 천공카드 시절이었다) 이 과정이 모두 모이고 나면, 약 10여페이지로 이루어진 한 가지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리고 그 분의 캐비넷에는 평생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본인만의 논리전개가 가득하다. (물론 요즈음은 디지털 노트를 많이 만드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것을 밝혀 둔다)
필자의 방법론을 생각해보면 위의 예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 목적과 상황마다 다르곤 하지만 (예를들어 논문탐색의 목적에 따라 연구노트의 구성방법론은 전혀 달라지곤 한다) 본질적으로는 그 순간에 가장 손에 익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똑같다. 계산이나 중요한 정리를 하고 있을때는 주로 종이와 펜을 사용하는 아날로그식으로 진행하곤 한다. 여러 디지털적인 방법론을 시도하고 난 다음에도 결국은 돌고 돌아 아날로그식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는 해당 방법론이 필자에게 가장 편하면서 즉각적이고 주의를 흐트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아마도 어릴때부터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지속적으로 행함으로 인해 몸에 익은 방법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 한때 유행했던 일종의 distraction-free 글쓰기 도구들이 있다. 요즈음은 대부분의 글쓰기 도구에 기본기능으로 제공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글쓰기를 할때 필자의 주의를 다른곳을 뺏기는것을 방지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보통 예쁜 디자인등을 기반으로 뭔가 글쓰고 싶어하는 환경들을 만들어주고 집중력을 도와주는게 포인트다.* 물론 그렇게 되면 긴 글이나 전문적인 글쓰기에서는 한계가 있기에, 지금에와서는 여기에 여러가지 데이터베이스 및 Markdown 포맷과 결합하는등 여러가지 기능적인 요소가 많이 함유된 도구들이 나오고 있다.
결국 생산활동의 성격에 따라 혹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기본 생산활동이라는것은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기본적으로 제약조건이 적고, 생각에 방해가 적게 되면서,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은 비단 지식 노동자 및 디지털 환경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인류가 쌓아올린 수많은 물리적인 도구들도 이러한 틀 안에서 유지되는것을 볼 수 있다.** 어떠한 작은 주제에 대해서 논리를 진행하다보면, 집중적으로 그것만 생각하는것이 결과적으로는 더욱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러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 지식조각은 조금 더 큰 단위로 관리되고 연결지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 생각하고 있는 맥락적 정보가 휘발되기 전에 기록해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작은 글타래 자체에 맥락적 정보를 기입해두는데, 문제는 나중에 이를 참조하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관리도구들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직관적으로 재참조하기 위해서는, 맥락적 정보를 바탕으로 주로 사용하는 워크플로우에 맞추어 지식을 보관해둘 필요도 있다. 이는, 지식 조각의 일종의 후가공 (post-processing)으로서 지식 조각이 만들어졌을때 바로 수행해야 할 부분이다. 그렇지 않다면, 필자의 기억과 함께 소실되어 지식 조각은 물리적인 종이 어디엔가 쌓여 다시 참조하지 못하거나 하드디스크 어디에선가 빛을 발하지 못한채 잠들기 쉽다.
* 개인적으로 어떤 생산활동이든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이러한 ‘예쁜’환경에 대한 요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기능적 요소가 남게 되는데, 전문성을 쌓아나가는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각 기능적 요소가 쌓여서 새로운 환경이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다른 글타래를 열어 보도록 하겠다.
** 오히려, 이 경우에는 너무 가짓수가 많다보니, 일종의 표준이 만들어지고 그 표준안에서 선택권이 주어지는경우가 많이 있다. 전문적인 작업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표준을 이해하고, 위의 기본 생산활동에 바로 적용할수 있도록 손에 익게하는것이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이다.
Leave a Reply